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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부 · 한국의 명품 주자

13장

한국의 명품 주자(注子)

지상의 비색과 천상의 순백이 빚어낸 보물

약 4분

박물관 전시 도록과 국가유산 아카이브에 기록된 다음의 기물들은 한국의 역사와 독보적인 조형미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주자(注子) 유산이다. 청자의 은은한 비색부터 조선 왕실의 기품에 이르기까지, 이 사물들은 시대를 통과해 온 문명의 마스터피스다.

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보 및 보물

청자 투각칠보문 뚜껑 주전자(국보)

고려 청자 전성기의 정교한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최고의 걸작이다. 몸체에는 섬세한 연판문(蓮瓣文)을 첩부하거나 새겼으며, 뚜껑에는 정교한 칠보무늬를 투각(透刻)하여 공간의 유기적 흐름을 완성했다. 조형적인 장식성과 함께 액체를 흘리지 않고 매끄럽게 끊어내는 완벽한 절수(切水)의 미학을 자랑하는, 예술과 공학이 결합한 완벽한 유산이다.

청자 구형 주자(국보, 청자 상형 거북이모양 주전자)

연화좌(蓮花座) 위에 안착한 거북이의 형상을 신비롭게 시각화한 고려 상형 청자의 정수다. 거북이의 등에는 이중의 귀갑문(龜甲文)이 정밀하게 상감 또는 음각되어 있으며, 길게 뻗은 거북이의 목은 액체를 적하하는 부리(注口)의 기능을 수행한다. 신화적 상상력과 당대 최고의 도자 성형 기술이 결합한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조각 예술품이다.

청자 어룡형 주전자(국보)

물고기의 몸에 용의 머리를 한 상상 속의 영수(靈獸)인 ‘어룡(魚龍)’을 본떠 만든 기물이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솟구쳐 오르는 듯한 생명력과 역동성이 흙의 기운을 통해 입체적으로 발현되었다. 꼬아놓은 연꽃 줄기 형상의 손잡이는 기물의 장식성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쥐는 이의 수고를 덜어주는 실용적 배려 구조를 취하고 있다.

청자 과형 주자(국보, 청자 참외모양 주전자)

인위적인 장식을 극도로 절제하고, 오직 식물이 지닌 자연스러운 선(Line)의 궤적에 집중한 고려 청자다. 잘 익은 참외의 부드러운 굴곡을 몸체로 삼고, 피어나는 연꽃잎을 뚜껑으로 얹어 조형적 안취(安趣)를 준다. 단순함 속에서 극치의 품격을 찾아내는 한국적 미학의 시초이자 절제의 미학을 대변한다.

백자 청화양각재수문 주전자(보물, 백자 청화양각매죽문 주전자 등 분원 기물 맥락)

조선 후기 광주 분원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왕실의 백자 주자다. 몸체에 입체적인 양각 기법과 푸른색의 청화(靑華) 안료를 동시에 사용하여 서수(瑞獸)나 문양을 정교하게 새겼다. 고려 청자의 유기적 곡선미와 대조되는, 조선 후기 백자 특유의 당당하고 담백한 골격과 사대부적 격조가 단연 돋보이는 사물이다.

2)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왕실 및 근대 황실 주전자

대한제국 은제 이화문 주자(大韓帝國 銀製 梨花文 注子)

순은으로 정교하게 제작된 대한제국 황실의 공식 주자다. 몸체 중앙에는 황실을 상징하는 문장(紋章)인 이화문(오얏꽃 무늬)이 선명하게 타출되거나 새겨져 있다. 전통적인 유기 주전자가 지닌 곡선의 유연함을 유지하면서도, 손잡이의 접합 방식과 부리의 마감 구조에서 서양식 은식기 제조 공학이 조화롭게 융합된 기물이다. 격동기 근대 한국 디자인사의 이행을 증명하는 중추적 사료다.

백자 청화운룡문 주자(白磁 靑華雲龍文 注子)

조선 왕실의 연향(宴享)이나 의례 공간에서 술 또는 향물(香水)을 담아 따를 때 사용하던 왕실의 기물이다. 최고의 권위를 상징하는 용이 구름을 헤치며 비상하는 역동적 사위(사위)가 푸른 청화(靑華) 안료의 세련된 필치를 통해 구현되었다. 군더더기 없이 상향으로 길게 뻗은 부리의 선조(線條)는 조선 왕실이 고수해 온 엄격한 법도와 기품을 단호하게 대변한다.

은제 도금 주자(銀製 鍍金 注子)

대한제국 고종 황제가 외국의 귀빈을 영접하고 외교적 환대를 나눌 때 사용했던 서구식 은제 주자다. 표면 전체를 화려하게 금도금했으며, 당대 유럽을 휩쓴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의 유기적 장식미와 동양의 전통적 조형성이 내밀하게 교차한다. 근대 주체들이 마주했던 글로벌 문화 교류와 외교 경제학의 흔적을 투영하는 독보적인 오브제다.

3) 국립민속박물관 및 지역 박물관 소장 생활사 주전자

백자 주자(白磁 注子, 조선 시대 민간 생활 유물)

민간의 일상에서 널리 쓰이던 투박하고 친근한 골격의 백자 주자다. 서민들의 주막이나 기거하던 사랑방에서 탁주나 따뜻한 숭늉을 담아내던 도구로, 화려한 의식적 문양은 배제되어 있으나 만졌을 때 흙 고유의 체온을 전하는 촉각적 안취(安趣)가 특징이다. 한국 고유의 ‘포용과 소통’이라는 민속적 삶의 양식을 증명하는 대중적 유산이다.

무쇠 탕관(鑄鐵 湯罐, 주전자형 약탕기)

화로의 불길 위에 직접 올려 물을 끓이거나 약재를 달이던 거칠고 묵직한 주철(鑄鐵) 기물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검붉은 산화의 흔적을 새긴 표면은, 그 자체로 한 가정이 통과해 온 고투의 궤적과 타자를 향한 치열한 돌봄의 서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내밀한 역사적 사료다.

근대 노란 양은 주전자(20세기 생활사 사료)

한국의 현대사 속에서 가장 역동적인 소통을 매개했던 알루미늄 재질의 황색 주전자다. 선술집에서 탁주를 주고받으며 민초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매개이자, 격동의 산업화 시기 노동의 현장 마다 늘 동행했던 도구다. 20세기 한국 물질문화의 집단적 기억을 대변하는 대중적 문화 아이콘으로 평가받는다.

『케틀뮤지엄 도록』(2026)에서 옮겨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