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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 주전자란 무엇인가 : 가치와 명분

2장

기록의 공백

한국 박물관 역사상 최초의 단독 큐레이션

약 2분

한국 박물관 역사상 주전자라는 단독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운 대형 특별전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기록이 부재한 것이 아니라, 사물을 이토록 단독 주어로 세운 기획전 자체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가 선점할 수 있는 독점적 기회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1) ‘주전자’라는 명칭의 학술적 벽

국공립 박물관의 사료나 도록을 검색할 때 ‘주전자’라는 순우리말 표기로는 유의미한 특별전 기록을 찾기 어렵다. 학계와 박물관학에서는 고서 사료에 근거하여 ‘주자(注子)’ 혹은 ‘급수기(汲水器)’라는 한자어 명칭을 엄격하게 고수해 왔기 때문이다.

그간 국내 박물관이 개최한 대형 특별전은 주전자를 독자적인 주체로 다루기보다, 언제나 상위 개념의 전시에 종속된 파편으로 출품해 왔다.

《고려청자 명품전》이나 《천하제일 비색청자》에서 국보급 ‘청자 구형 주자(거북이 모양 주전자)’를 핵심 유물로 전시

《차(茶) 문화 특별전》 또는 《궁중 연향 문화전》에서 은제 주자나 백자 주자를 다구(DA-GU)의 일부로 전시

주전자는 늘 다른 서사를 빛내기 위한 조연이자 주변부에 머물렀을 뿐이다. 주전자 자체의 조형미와 문명사적 가치만을 독립적으로 직조한 큐레이션은 한국 박물관사에서 완전히 비어 있었다. ‘캐틀 뮤지엄’이 유일무이한 타이틀을 거머쥐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 대중 전시 및 브랜드 팝업의 공백

이탈리아 알레시(Alessi)의 디자인 주전자 기획전이나 글로벌 디자인 재단의 대규모 순회전과 달리, 한국의 현대 디자인 미술관(DDP, 국립현대미술관 등)에서는 주전자를 주제로 한 글로벌 브랜드의 대형 전시가 열린 적이 없다. 간혹 공예 페어 등에서 작가 개인의 컬렉션이 소규모 부스로 출품된 사례는 있으나, 이를 ‘배려, 포용, 환대’의 문명사적 서사로 엮어낸 미디어 아카이브 형태의 특별전은 완전히 부재한 영역이다.

3) 공백이 부여하는 독점적 기회와 명분

기존 박물관들의 기록적 공백은 우리가 구축할 아카이브가 ‘국내 최초의 주전자 전문 아카이브 겸 뮤지엄’으로서 독점적 권위를 획득함을 의미한다. 300점이라는 규모 역시 기존 국공립 박물관이 주전자를 다른 거대 유물 속에 방치했던 태도와 대조하면 강력한 강점으로 전환된다.

“국립박물관의 수천 개 유물 속에 묻혀 조연에 머물렀던 주전자들을 세상 밖으로 꺼내어, 공간의 서재에서 세계 최초로 가장 존엄하게 예우하고 기록한다.”

이 뚜렷한 명분과 서사적 고결함을 무기로 삼는다면 학계의 학자, 교수, 학예사 등 전문가 그룹 또한 자발적으로 유물 데이터와 학술적 자문을 아낌없이 지원할 것이다. 기록이 없다는 것은 아쉬움이 아닌, 우리가 첫 기록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최고의 기회다.

『케틀뮤지엄 도록』(2026)에서 옮겨 실었습니다.